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련 붕괴 (문단 편집) === 유지 가능성 === 소련이 정치적, 경제적으로 위기에 빠진 1990년 당시 소련이 해체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.[* [[안드레이 란코프]] 교수는 소련이 붕괴할 것을 1970년대 말에 알고 있었다고 한다.] 당시 [[카자흐스탄]], [[우즈베키스탄]], [[투르크메니스탄]], [[키르기스스탄]], [[타지키스탄]], [[아제르바이잔]], [[벨라루스]] 같이 소련 창설기부터 소련에 소속되어 있던 공화국들은 소련 체제를 유지하는 데 찬성했으며 [[발트 3국]]이나 [[우크라이나]], [[조지아]], [[몰도바]] 같은 동유럽 지역에서 분리주의 열기가 강했다. 따라서 1991년 전까지만 해도 소련은 국가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지만 완전히 분해되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. '''역사에서 소련이 유지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는 [[미하일 고르바초프]] 소련 대통령의 마지막 승부수였던 [[주권국가연맹]]이었다.''' 당시 소련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는 1990년부터 1991년까지 연방 내 구성국들과 연방정부의 정치적 갈등을 조율하면서 연방 내 공화국들에게 자치권 확대를 약속하면서 기존 소련 체제를 유지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. 이에 연방 구성국들은 고르바초프의 제안에 동의하면서 1922년 체결된 소련 창설조약을 대체하는 [[주권국가연맹]] 조약을 준비하고 있었다. 비록 조약 준비 당시 [[발트 3국]]과 [[몰도바]], [[아르메니아]], [[조지아]]는 소련에서 탈퇴했지만 그럼에도 나머지 9개 구성국들은 [[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|1991년 소련 존속 투표]]의 결과처럼 연방 잔류 의사를 표시했다. 당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이었던 [[보리스 옐친]]과 주요 공화국 지도자들은 고르바초프의 제안에 호의적이었고 주권국가연맹 창설조약은 8월 20일 예정되어 있었다. 하지만 1991년 8월 19일 소련 정부 내 주요 공직자들은 주권국가연맹조약 서명계획을 입수하고 군을 동원하여 고르바초프를 실각시키고 기존 체제를 고수하고자 했다. 그러나 당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던 쿠데타 세력은 소련 전역에서 예상보다 격렬한 저항에 맞닥뜨렸다. 결국 [[8월 쿠데타]]는 3일만에 실패했다. '''[[8월 쿠데타]]는 소련이 국가로써 유지될 수 있었던 마지막 가능성을 완전히 일소시켰다.''' 공화국들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쿠데타 과정을 통해 소련 공산당을 위시한 기득권 세력이 공화국들과 더 이상 타협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더 이상 소련에 남 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. 실제로 8월 쿠데타 이후 12월 초까지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8개국이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. 이 상황에서 [[보리스 옐친]]을 비롯한 당시 공화국 지도자들은 소련 붕괴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는 걸 직감했다. 결국 소련 구성국 지도자들은 기존에 비준하려고 했던 [[주권국가연맹]]을 좀 더 [[유럽연합]]이나 [[영연방]]과 비슷한 [[독립국가연합]] 체제로 개편하는데 동의했다. 과거 [[대영제국]]이 [[제2차 세계 대전]] 이후 [[탈식민화]]를 거치면서 [[영연방]]으로 개편되었듯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소련은 [[독립국가연합]]이나 [[유라시아 연합]] 같은 국제기구로 개편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. 실제 소련을 [[소비에트 제국|식민제국]]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소련 해체를 20세기 마지막 [[식민제국]]의 해체로 바라보기도 한다. 오늘날 [[친소]], [[친러]]적인 시각에서는 [[8월 쿠데타]]가 성공했다면 소련이 유지될 수도 있었다고 가정하지만 설령 [[고르바초프]]를 몰아낸 보수파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다 하더라도 오히려 소련은 [[천안문 사태]]보다 훨씬 더 방대한 군사력 행사를 통해 중앙권력을 회복해야 했을 것이다. 당시 소련이 [[소련-아프가니스탄 전쟁]]으로 인해 [[소련군]]이 보유했던 군사적 역량을 상당 부분 소진했음을 생각한다면 설령 [[소련군]]이 중앙정부에 응했다고 해도 고전을 피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. 더욱이 쿠데타가 일어날 [[1991년]] 당시 시점에서 소련은 막대한 정치적, 군사적 원조 없이 불가능했던 사회주의 진영의 종주국 역할에 부담을 느끼고 [[바르샤바 조약 기구]]나 [[코메콘]] 등 냉전 시기 동안 유지해 오던 군사적, 경제적 동맹을 스스로 해체했다. 여기에 계획경제의 한계점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경제력이 심각하게 약화된 상황이었다. 이렇게 정치적, 경제적 위기를 겪던 상황에서 소련이 대규모 [[유혈사태]]까지 일으키며 분리독립하려는 공화국들을 강제로 진압했다면 최소 서방의 경제제재부터 최대 [[천안문 6.4 항쟁]] 이후의 [[중국]] 이상의 외교적 타격, [[소수민족]]들과 [[유고슬라비아 내전]]과 같은 독립 전쟁이 벌어지는 등 소련 입장에서 결코 현실 역사 이상으로 순조롭게 흐르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